책제목: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보는 사람들
저자: 이나다 도요시
역자: 황미숙
출판사: 현대지성
발행일: 2022년 11월 10일
요즘 친구가 "나 A 영화 봤어."라고 해서 그 영화에 대한 감상이나 해석을 나누려고 하면 "유튜브 요약으로 봤지만."이라고 말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면 대화를 깊게 못 나누고 "그게 영화를 봤다고 할 수 있는 거야?"라고 바로 받아치곤 합니다. 사실 저는 유튜브에서 영화 요약본 보는 걸 매우 싫어하거든요. OTT 서비스를 이용할 때 오프닝 건너뛰기는 이용하긴 하지만 영화에선 사용하지 않고, 드라마도 1화는 무조건 풀로 보고 난 다음 2화부터는 건너뜁니다. 워낙 볼 게 많다 보니 가볍게 볼 만한 웹드나 내용이 단순한 작품들은 1.2~1.25배속으로 보고, 나머지는 1배속 그대로 보면서 콘텐츠를 즐기고 있습니다. 어떤 분은 2배속으로 본다고 하던데 내용을 100% 이해할 수 있을지 심히 의심이 되긴 했습니다.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게 좋다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스포당해서 친구와 실제로 절교했을 정도로, 스포일링에 굉장히 예민합니다.
이 책을 처음에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기억나지 않지만, 제목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내가 저런 사람은 아니지만, 대체 저런 사람들이 빨리감기를 하는 이유가 너무 궁금했거든요. 유튜브 영화 요약본 조회수만 봐도 알 수 있듯이 윗 문단의 밑줄 친 것들 모두 주변에서 많은 분들이 하고 계신데요. 가벼운 독서모임에서 함께 이야기하기 좋은 책 같아서 독서모임 선정 도서로 읽어봤습니다.
책을 한 줄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영화를 감상하기보다는 소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그래서 빨리 감기 또한 콘텐츠를 소비하는 사람들에게는 현명한 방법 중 하나다... 라는 내용입니다.
영화를 '감상'하지 않고 '소비'한다. 처음 이 문장을 접했을 때는 알듯말듯 아리송했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니 알 수 있었어요. 저는 20세기 말에 영화를 대하던 방식만이 정답이라고 생각해온 거였습니다.
내용요약
저자는 현재의 우리가 콘텐츠를 어떻게 소비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렇게 되었는지를 다방면에서 분석합니다. 어렴풋이 알고 있던 것도 있지만, 전혀 연결고리가 없다고 느꼈는데 알고 보니 영향을 끼치고 있어서 놀라웠던 것도 있습니다. 그리고 Z세대의 특성과도 연관지어 분석하기도 했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보이는 콘텐츠 소비 형태 (핵심은 '시간 제약으로부터의 자유')
1. 빨리감기나 건너뛰기(스킵)를 해서 감상 시간 자체를 줄입니다. 구독 서비스가 많이 생기면서 공급이 늘어났지만, 우리가 콘텐츠를 보는 시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2. 행동에 의미 부여하는 걸 귀찮아해서 대사로 다 설명해주길 선호합니다. 아무 대사가 없거나 매우 일상적으로 보이는 장면들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실과 부엌이 일체화되어 집안일을 하면서 TV 보는 게 일상이 되어, 자막이 없으면 불편합니다.
3. 쓸데없는 감정 소모는 곧 시간 낭비와 이어지므로, 결말을 미리 알고 보는 게 마음이 편합니다.
4. 작품 해석을 바로바로 보길 원합니다. 난해한 내용보다 한눈에 알기 쉬운 내용을 선호합니다.
5. 영화를 '감상'보다는 '소비'의 개념으로 봅니다. '보고 싶다'는 생각보다 '알고 싶다'는 생각이 지배적입니다. 영화나 드라마는 주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위한 소재입니다.
6. 새로운 무언가에 도전하기보다는 재미있었던 걸 또 봅니다. (보고 싶은 부분만 따로 볼 수 있는 세상!)
이는 곧 Z세대와 연결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인데요. 왜냐하면 그들의 특징과 맞물리기 때문입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들은 2000년이 지난 후 태어나 미래의 트렌드를 주도할 사람들이기 때문이지요.
Z세대가 개성을 존중하는 것은 맞지만, SNS 속 사람들이 개성 있는 만큼 내 개성도 뚜렷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옆 동네 친구나 다니던 학교, 회사 사람들과 나를 비교하던 옛날에 비해 요즘의 Z세대는 전 세계 사람들과 라이벌이 될 수밖에 없는 환경에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제너럴리스트(다방면을 골고루 해내는 사람)보다 스페셜리스트(특정 분야를 탁월하게 잘 해내는 사람)를 선호합니다.
필터 버블, 피키 오디언스가 심해지면서 자신이 예상한 대로 흘러가는 전개를 보고 싶다는 사람들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기분을 망치기 싫어서 결말을 먼저 알고 보길 원하는 현상이 자연스럽게 겹쳐집니다. 많은 작품들 중에서도 내가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만 보려고 합니다. 봤던 작품 중에 마음에 드는 장면이 있으면 그 장면만 계속해서 보기도 합니다.
* 필터 버블: 본인 맞춤용 데이터만 제공받아서(알고리즘, 빅데이터) 정보를 골고루 못 보고 특정 정보만 소비하게 되는 현상
* 피키 오디언스: picky audience. 본인이 좋아하는 것, 원하는 것만 보고 싶어하는 사람들
이렇게 정리하고 나니 2020년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특징을 크게 2가지로 말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는 '제한된 시간으로부터 자유롭고 싶다', 다른 하나는 '영화나 드라마도 정보를 습득하는 콘텐츠라고 생각한다'.
빨리감기에 거부감이 드는 이유는 ‘원형의 상태’로 감상하지 않기 때문인데, 사실 우리는 이미 원형의 상태로 감상하고 있지 않습니다. 우리는 꾸준히 시간적, 장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어 왔는데 몰랐을 뿐입니다! (TV, DVD, 비디오, OTT)
19세기 말~ : ‘영상’은 영화관에서만 볼 수 있다.
1950년대~ : 가정의 TV로 볼 수 있는 장소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1980년대~ : 비디오와 DVD로 볼 수 있는 시간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1
2000년대 후반~ : 영상 배급을 통해 볼 수 있는 물리적,금전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2010년대 후반~ : 빨리감기 시청, 건너뛰기 기능의 추가로 인행 시간적 제약으로부터의 해방 2
집에서 비디오로 영화를 볼 수 있는 세상이 되었을 때, 과연 영화관에서 영화를 봐오던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어쩌면 지금 빨리감기로 보거나 요약본으로 보는 사람들이 이해 안 되는 것과 같은 감정을 느끼진 않았을까요?
'우리는 꾸준히 시간적, 장소적 제약으로부터 해방되어 왔었다'는 부분을 읽고 무릎을 탁! 쳤습니다. 저는 단지 2000년대 후반까지의 영화 보는 방식에 익숙하고, 심지어 그게 정답이라고 생각해왔을 뿐이었던 겁니다.
원서 〈映畵を早送りで觀る人たち〉로 한국 번역판 제목과 동일합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이야기가 고스란히 예시로 적혀 있지만 위화감이 전혀 없습니다. 그만큼 현재 일본과 우리나라 콘텐츠 소비 형태나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지요.
그래도 아직 저는 영화나 드라마를 빨리감기 하거나 요약본을 보거나 하지는 않습니다만, 언젠가부터 배속을 빨리 하는 건 굉장히 합리적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로가 지키고자 하는 선이 다를 뿐, 결국 현대인의 생활방식에 어느 정도 타협해서 저만의 방식대로 콘텐츠를 소비하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저에게 과연 요약본만 보거나 빨리감기로 영화를 보는 날이 올까요? 책의 마지막 문장으로 답을 대신하겠습니다.
빨리 감기가 어떻게 필연성을 획득했는지는 충분히 이해했다. 다만 그래도 역시 의문이 남는다.
영화를 빨리 감기로 본다니 대체 어찌 된 일일까?
(p.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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